🎙️ [11호] 이제 다음 챕터로 넘어가자

#담쟁이레터 #담롱 #엔딩크레딧 #설날

2023. 1. 24.

이 메일이 잘 안보이시나요?

vol.11. 2023년 1월 4주차 뉴스레터

🌱 오늘의 담쟁이 레터

1️⃣ PD노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2️⃣ 인사이트방 엿보기
: #얼굴없는_사진전 #고졸이_성인이_되는_과정 #오이도역리프트추락참사 #스마트농업_기후위기

3️⃣ 이달의 영업왕: 엔딩 크레딧

안녕하세요. 묵자 PD입니다.

이번에 제작한 영상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과 '성노동자해방운동 주홍빛연대 차차'에서 먼저 제안을 주신 기획입니다. 평소에 다뤄보고 싶던 주제이기도 해서 덥석 제안을 승낙했지만, 시작 단계에서부터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했던 기획이기도 합니다. '다뤄보고 싶은 주제' 정도로만 생각했지 자세히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못했었거든요.

'경찰의 성매매 단속 신체 촬영 및 인권침해'라는 사건명을 처음 접했을 때도, 그 의미를 하나하나 뜯어서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어요. 경찰의 불법 촬영이 왜 채증으로서 필요하지 않고 정당화될 수 없는지 제 자신부터 이해시켜야 했었거든요.

항상 가장 큰 배움은 촬영 현장에서 오는 것 같아요. 아무리 기사와 자료를 읽고 공부를 하여 준비해도 인터뷰이의 언어로 전달되는 이야기의 힘이 정말 정말 크더라고요. 촬영 현장에서 느꼈던 감각을 영상을 통해서 고스란히 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번 기획의 관건이었던 것 같아요. 영상이 인권침해 사건을 알리는 것을 넘어 한국 사회에서의 성매매 여성의 삶에 관해 새로운 관점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물꼬를 틔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기획 단계부터 많은 도움을 주신 김지혜 변호사님과 여름 활동가님, 용기 내어 목소리 내주신 은경님과 연희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묵자 PD 드림

▲ 10월 5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모습. ©성노동자해방운동 주홍빛연대 차차

안녕하세요, 여름 PD입니다.

작년 10월 5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진행되었던 기자회견에 묵자 PD와 함께 촬영하러 갔습니다. 기자회견은 경찰의 성매매 단속 신체촬영 및 인권침해를 규탄하는 목적이었습니다. 이어지는 활동가들의 발언을 들으며,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지? 이게 맞는 건가?'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 의문에서 시작해, 우리의 이야기를 꼭 다뤄주었으면 좋겠다는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고 영상을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분명히 다뤄져야 하는 이야기들이 존재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감춰지고 숨겨집니다. 듣기 좋은 이야기, 그렇게 불편하지 않은 이야기, 모두가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이야기가 아니니까요. 성매매, 성노동에 대해서는 어쩐지 이야기를 꺼내기가 어려웠습니다. 잘 모르겠다, 어렵다는 이유로 뒤로 물러서는 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내가 어떠한 판단을 내릴 필요 없이, 그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대상화된 객체 혹은 토론을 벌일 주제가 아니라 단지 노동이라는 은경님의 말씀이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기획부터 제작까지 세 달가량의 시간을 통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렵다고 여겼던 이야기들의 모든 정답은 결국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쓰는 다정함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여름 PD 드림

*제목을 누르면 원본 기사로 연결됩니다.

아프간 여성들의 '얼굴 없는' 기념사진

이번만큼은 제 글을 읽지 않아도 좋으니 사진을 봐주세요. 기사에는 운동하는 아프간 여성들의 사진이 있습니다. 탈레반은 여성에게서 다른 모든 것과 함께 스포츠 또한 빼앗았으니 아마 사진은 몰래 촬영했겠지요. 저마다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했지만 부르카 탓에 그들의 몸짓과 표정을 다 볼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사진 너머로 빛나는 눈빛과 힘있는 움직임이 전해오는 듯했습니다. 언제쯤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슬프고 어쩐지 억울해 목이 막히는 기분입니다.

엄마는 고졸만큼은 되지 말라고 말했다.

<커밍 업 쇼트>라는 책은 미국 노동자 청년들을 구술인터뷰함으로써 노동자 계급이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연구합니다. 그 과정 속에서 이들이 어떤 사회적 압박을 받고 심리적인 내재화 단계를 겪는지를 밝혀내고자 합니다. 연혜원 연구자는 한국의 공업고등학교 학생을 통해서 같은 과정을 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고졸은 되지 말아야지"라는 상고 공조 출신 부모님의 압박 속에서 그것을 벗어나고자 노력한 연구자. 그는 성인이 되어 부모님과 지금의 특성화고 졸업생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연구를 연재하는 중입니다. 저는 그 과정을 지켜보고자 합니다.

지하철 기관사가 본 전장연 시위

설 연휴 전날인 금요일(20일) 아침, 제 출근길은 평소보다 소란스러웠습니다. 지하철 역사 안에 경찰들이 대거 몰려 있었고, 승강장 안에는 취재진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그제야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 참사' 22주기를 맞아 시위가 열린단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 참사는 국내 장애인 이동권 대투쟁이 촉발된 사건입니다. 70대 장애인 부부가 집에 가려고 오이도역 지하철 리프트를 탔다가 추락해 한 명이 숨지는 참사였습니다. 그날 출근길, 저는 한 지하철 기관사의 칼럼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제게 가장 인상 깊었던 문구를 여러분에게도 전해봅니다. "이렇게 길게 진행될 일이 아니었다. 서울시장과 정치권이 장애인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었다면 벌써 해결될 일이었다."

스마트한 농업은 누구에게 이윤을 가져다 주나요?

제ICT, IoT, 드론, AI, 빅데이터, VR·AR, 멀티버스…. 4차 산업혁명 시대, 기술은 마치 새로운 시대를 열어줄 만능 해결책인 양 제시됩니다. 정부는 기후위기로 인한 농업의 어려움에 '스마트팜'을 해결책으로 내놓습니다. 경북 상주에서 30년째 농사를 짓고 있는 김정열 씨는 말합니다. "지구가 뜨겁다고 우리가 밖에 안 나가고 실내에서 에어컨만 돌린다고 기후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잖아요? 스마트팜 같이 산업적이고 기술적인 대안은 기후위기에 대한 진짜 해결책이 될 수 없어요." 과연 이 '똑똑한' 농장에 우리의 미래가 있을까요? 정열 씨는 왜 "정부는 농민들이 농사에서 손 떼길 바라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걸까요? (후속 기사, 기후위기 해법 "우리가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는 것"도 함께 읽어보세요.)

2022년과 헤어질 결심, 엄정화 ‘엔딩 크레딧’을 들으며

엄정화 <엔딩 크레딧>

#노래 #마지막대사 #담롱 #회식 #결말

안녕하세요! 11호의 영업왕을 맡게 된 융융 PD 입니다. 담쟁이 선생님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얼마전 담롱은 회식 자리를 가졌어요. 디제이 여름 PD가 엄정화의 <엔딩 크레딧> 을 틀었는데, 그땐 아무생각 없이 따라 부르다가 어느 순간 일상에서도 반복재생하는 저를 발견했어요. 벅차오르는 비트의 인트로를 들으며 비장하게 출근하고, 퇴근길엔 "마지막 대사" 가사를 "마지막 퇴사"로 개사하며 귀가해요.

생각해보니, 회식 때 엔딩 크레딧을 재회한 건 우연이 아니었을지도 몰라요. 사실 저는 1월 1일에도 2022년을 보내지 못하고 붙잡고 있었는데, 음력 설 때는 엔딩 크레딧을 들으며 올해의 시작을 진심으로 기념할 수 있었거든요.

저에게 2022년은 후회와 실망으로 점철된 해라고 생각했고, 이 불행들을 만회하기 전까진 2023년을 맞이할 수 없다고 고집을 부렸었어요. 어쩌면, 페미니스트 작가 사라 아메드가 말하는 '행복 대본'을 따르려고 충실했었던 것 같아요. 행복 대본은 "그렇게 (정상적이지 못한 존재로) 살면 불행하잖아,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사회적 규범이라고 해요. 그래서 저자는, 페미니즘의 역사가 "남들처럼 '행복하게 살아라'라는 순응의 의무에 불만을 토로한 여성들이 일으킨 소란의 역사" 라고 말하기도 해요.

정상성이 규정하는 행복의 기준에 저의 한해를 의거하면, 불행한 결말 같았어요. 근데 엔딩 크레딧을 들으면 왠지 모를 초연함이 들어요. 정말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이지만, "마음껏 실망하고 후회해도 괜찮아. 이제 다음 챕터로 넘어가자"라고 말하는 것 같거든요.

다음 챕터, 즉 올해 제가 하는 선택들에도 분명 후회가 따를거에요. 남들이 좋다고 하는 그 행복을 누릴려고 어설프게 흉내도 낼거구요. 그럼에도, 그 과정속에서 작년보다 좀 더 나로서 생각하고, 느끼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엔딩 크레딧은 어쩌면 다짐의 노래일수도 있겠네요. 의식적으로 나를 잃지 않겠다는 다짐!

구독자 선생님들의 올해의 노래는 무엇인가요? 아직 못 정하셨다면, 엔딩 크레딧 한번만 들어주세요. 제일 좋아하는 마지막 부분을 공유하며, 영업왕은 여기에서 인사드릴게요.

너와 나의 영화는 끝났고
관객은 하나 둘 퇴장하고
너와 나의 크레딧만 남아서
새까만 프레임을 가득 채워
또 다른 영화는 시작됐고
관객은 하나 둘 입장하고
너와 나의 추억만 남아서
위로 날 위로해

융융 PD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