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를 위해 일할 권리 (빵)를 원하지만 인간답게 살 권리 (장미) 또한 포기할 수 없다.” 1919년, 미국 뉴욕의 섬유산업 여성노동자 1만 5,000여명은 거리로 나와 임금, 노동조건, 참정권 보장을 요구했습니다. 3.8 여성의 날, 흔히 ‘빵과 장미’의 날로 수사되는데요. 그 배경에는 차별과 억압에 맞서 싸워온 여성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중요한 날을 앞두고 곰곰 생각해봅니다. 여성인 나는 누구의 언어와 어떤 지식의 계보를 붙잡고 살아올 수 있었을까. 여성들이 생존해온 역사 그 자체가 아닐까요. 흑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오드리 로드가 ‘우리는 앞선 세대의 여성들로부터 우리의 현재 삶을 해쳐나갈 수 있는 힘을 배우고, 이것은 우리의 연결이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 처럼요.
다만, 로드는 여성이 젠더라는 범주하에 동일한 집단으로 설명되는 것을 거부합니다. 여성들 안에 존재하는 힘의 근원에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죠. 차이의 정치는 로드의 책 <시스터 아웃사이더>에서 잘 말해주는데요. “차이보다는 동일성을 강조하는 운동 진영에서 ‘흑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라는 로드의 정체성은 늘 공격의 대상”이 됐고, “겉으로는 자매(sister)로 불렸지만, 실은 영원한 아웃사이더(outsider)였다”고 해요. 로드는 “여성들 앞에선 흑인으로, 흑인들 앞에선 여성으로, 이성애자들 앞에선 레즈비언으로 쉼 없이 분투”해 왔고요. 로드는 여성 억압을 말하기 위해 시민권, 섹슈얼리티, 계급 등 여러 가지 사회 구조가 어떻게 교차하는지 살피는 게 중요하다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변화의 힘은 차이에서 나오고, 차이야말로 여성들 사이의 대화를 촉진하니까요.
구독자 선생님들에게 페미니즘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개인적으로 저는 페미니즘을 처음 접했을 때, 그리고 현재 제가 인식하는 의미는 사뭇 다른 듯 해요. 솔직히 말하면, 어쩔 땐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과연 차이는 우리의 힘이 될 수 있을까.’ ‘생존하는 것조차 버거운데, 모른척하고 편하게 살고 싶다’ 등 여러 감정들이 드네요. 무력하게 느껴질 때 자주 생각나는 글이 있는데요. 2022년 대선이 끝난 후 올라온 한 트윗입니다. “우리 손 잡고 놓지 말기. 손에 손 잡은 원 안으로 가장 약한 자들 들여보내기. 절대 손 놓지 않기. 용기 있기.”
기억나는 이유는, 이 글이 로드의 글과 공명하기 때문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가난한 우리, 레즈비언인 우리, 흑인인 우리, 늙어버린 우리”의 관점이 페미니즘의 토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이요. 이 말을 하려고 서론이 길었는데요. 부디 (저 포함) 구독자 선생님들이 기력을 잃지 않고, 서로의 존재를 계속 확인하면서 힘 받았으면 좋겠어요. 올해 담롱에서 재밌고 멋있는 기획들도 준비하고 있으니까, 많이 지켜봐주시고요. 글이 길어져 이만 (급) 줄일게요. 즐거운 3.8 여성의 날 주간 보내시길 바라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