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9일 일요일. 이태원역에서 내렸습니다. 1번 출구로 나가 '생명과 안전의 길'이 된 거리에서 울다가 서울시청 분향소까지 추모 행진을 했습니다. 그날 날이 정말 좋았고, 거리에 경찰이 참 많았습니다. 경찰 병력은 어디에 동원되는가, 그날 이랬더라면, 하는 생각에 입안이 씁쓸했습니다.

숭례문을 지날 즈음이었을까요. 걷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노래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날 행진엔 희생자 정원 님을 기억하며 친구들이 만든 영상에 삽입되었던 위즈 칼리파의 'See You Agian', 희생자 형주 님의 누나가 동생을 그리워하며 듣던 윤하의 '바람', 그리고 BTS의 '소우주' 등이 틀어졌습니다. 추모 행진에서 이 노래들을 듣게 될 줄 몰라 생경하고 반가운 마음과 함께 삶을 살아가던 사람이 죽었음을 새삼 느꼈습니다.

노래를 들으면 희생자들의 죽음보다 삶이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세월호 참사 7주기 전시 '진주잠수부' 중 박다함의 작품 <2013.12.20.-2014.11.24>(링크)를 보면서도 그랬습니다. 잔디밭 위에 놓인 스피커에서 걸스데이 'Something', AOA '짧은치마' 등 2014년에 유행했던 노래들이 흘러나오는 작품이었는데요. 현실과는 다르겠지만서도 노래와 함께 '나'의 장면들과 '너'의 장면들이 겹쳐져 떠오릅니다. 노래방 인기차트에서 비슷한 노래를 선곡하고, 친구들과 비슷한 노래를 따라 부르는 장면들.

노래를 듣고 구호를 외치며 걷고 걷고 걷다 보니 어느덧 서울시청 분향소에 도착했습니다. 분향소 앞에는 길게 줄이 늘어서 있었고, 국화꽃을 받고 희생자들의 얼굴 앞으로 갔습니다. 아직도 그 앞에선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마주하고, 진실의 한 귀퉁이라도 잡아보려 애쓰는 것, 이전과는 다른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나아가는 것이 추모임을 이제는 조금 알겠기에, 얼얼한 마음으로나마 계속 걸어야겠습니다.

이태원 1번 출구에 가기에 앞서서 먼저 서울광장에 들렀다. 시간은 오후 1시쯤 그렇게 많지는 않은 사람들이 분향소 앞에서 헌화를 하고 있었다. 분향소 앞에선 유가족 또는 지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159명의 영정 중 자신이 그리는 사람의 얼굴을 찾고 있었다.

분향소 옆에는 분향소를 찾아온 사람들이 적은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너와 함께 있던 시간이 그립다는 말. 잊고 있다 생각했는데 사실은 잊지 못했다는 말. 미안한다는 말. 책임자를 처벌하겠다는 말. 끝까지 기억하겠다는 말. 아직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참사 이후 1년 동안 사람들의 들끓는 감정의 자욱들이 남아 있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분향소에서 느낀 감정을 품고 서둘러 행진을 하러 갔다. 분향소 앞에 머물던 시간이 조금 길어져 행사에 늦게 도착했다. 이미 행진이 출발한 뒤라 겨우 따라가 행진에 합류했다. 큰 깃발들이 많았다.

사람들은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걸으면서 느낀 것은 무엇이었을까. 사실 아무 느낌도 없었다. 분향소 앞에서 느낀 감정이 행진을 하면서 사라진 것 같았다. 그것은 저 깃발들 때문에? 윤석열 퇴진를 외치는 사람들 때문에? 어쩌면 이 정치적 행진을 내 가슴 속 깊이에서는 추모의 감정과 대비된다고 생각해 아니꼬왔을지도 모른다.

저는 그날 밤늦게까지 친구와 놀고 자정 직전에야 집에 들어갔어요. 11시 58분경, 뉴스 속보가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속보] 심정지 추정 환자 50여명 발생'이란 기사였죠. 집에 들어가니 부모님께서 긴급 속보를 보고 계셨어요. 구급대원이 심폐소생술을 하는 영상이 나오고 있었죠.

부디 더 큰 일이 없길 기대하며 잠이 들었지만, 다음 날 아침 희생자 수가 100여 명이 넘었단 소식을 접했어요. 이튿날 담롱 촬영이 하나 있었어요. 촬영 내내 기분이 묘했던 것 같아요. 택시에 흘러나오는 라디오에서 희생자들이 안치된 병원 명단이 하나둘 불리는 순간,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침묵이 어렴풋이 기억날 뿐이에요.

참사 직후 저는 일주일 내내 울었어요. 출퇴근길에 툭하면 눈물이 쏟아졌죠. 참사가 일어났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가 답답했어요. 이후 연이은 참사와 사건사고를 겪으며 우리 모두 망가진 사회에 살고 있단 생각이 들 뿐이에요.

한 교수님이 그러시더군요. "언제부터인가 모든 싸움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이 됐고, 언제부터인가 모든 희망이 사실은 절망이 되는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희망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믿고 싶어요.

담쟁이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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